정약용 도서관에서는 정약용 연구 및 자료 수집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탐색하며, 그의 사상과 업적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공유하고 있습니다. 다양한 문헌과 사료에 대해 적극적으로 알리며 깊이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.
다산연구소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개혁가인 정약용의 사상과 업적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보급하는 것을 목표로 그의 저술과 학술 연구, 자료 수집, 교육 및 출판 활동을 통해 정약용 사상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있습니다.
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기념인물인 정약용 선생님의 실사구시와 인문정신을 현대적으로 계승하고자 1986년부터 계속된 남양주시의 대표축제입니다.
조선 정조대의 문신이자 실학의 대가였던 다산(茶山) 정약용(丁若鏞, 1762∼1836) 선생의 묘이다. 묘역은 부인 풍산홍씨(豐山洪氏)와 합장된 하나의 봉분 형태이다.
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(1762∼1836) 선생이 유배되어 11년간 머물면서 많은 책을 저술했던 곳이다. 앞 뜰에는 차를 달였다는 ‘청석’이 있고, 한 켠에는 ‘약천(藥泉)’이라는 약수터가 있어 당시 다산의 유배생활을 짐작하게 한다.
『정약용 행초 다산사경첩(丁若鏞 行草 茶山四景帖)』은 정약용(1762~1836)이 강진에 유배되었을 때 조영했던 다산초당의 전후좌우에 있는 다조(茶竈)ㆍ약천(藥泉)ㆍ정석(丁石)ㆍ석가산(石假山)의 네 가지 경물을 읊은 칠언율시를 행서로 쓴 것으로 정약용의 어느 필적보다도 그 의미가 깊다.
『정약용 필적 하피첩(丁若鏞 筆蹟 霞帔帖)』은 서문에 적혀있듯이 정약용이 강진에 유배되고 얼마 후 아내 홍씨부인이 바래고 해진 치맛감 여러 폭을 부쳐온 것을 잘라서 두 아들에게 교훈이 될 만한 구절을 직접 짓고 써준 것이다. 제작연대는 경오년 즉 1810년(순조 10) 7월과 9월로 그의 나이 49세 때였다.
정약용은 이익(李瀷)의 학통을 이어받아 발전시켜 각종 사회 개혁사상을 제시하여 나라를 새롭게 하고자 노력하였으며, 문학 · 예술 · 과학 · 의학 · 철학 · 정치학 · 지리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위대한 업적을 이루어냈다. 이렇게 정약용이 평생에 걸쳐 이룩한 다방면에서의 업적을 모두 모은 책이 《여유당전서(與猶堂全書)》이다.
22권 구성으로 이루어진 다산의 시문집